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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의 영성생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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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임신부 작성일14-09-03 08:03 조회15,79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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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도 역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수련하는 가운데 점차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물 안에서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사실을 늘 보는 ‘영적 시각’을 가지고
사물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실을 실감하는 ‘영적 감각’을 지녀야 한다.
 
또한 사물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신앙적 자세’를 길러야 한다.
자기는 하느님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침투되어, 하느님을 숨쉬면서 산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하고 자각하고 그 의식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4) 생활 속에서 기도를 계속한다.
 
생활 속에서 기도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옳고 선한 생활을 하고
사랑과 봉사의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생활의 모든 시간과 분야에 기도의 ‘의식적 행위’가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기도의 ‘의식적 행위’란 과연 무엇인가?
 
기도는 “하느님과의 마음의 대화” 또는 “주님과의 내면적 친교”라고 하는데,
이 대화와 친교는 어느 정도 ‘의식적’이어야 ‘기도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정과 감정을 여러 모양으로 표명한다.
랑, 찬양, 감사, 예배, 봉헌, 복종, 믿음, 희망, 신뢰, 의탁, 통회 그리고 여러 은총의 간구 등등.
이와 같은 심정과 감정이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드러나야
비로소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이 활동을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바치겠습니다.”
- 생활 속에 이와 같은 의식을 가지는 것도 여러 ‘단계’와 ‘정도’의 차이가 있고,
여러 ‘농도’와 ‘강도’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아주 생생하고 선명하고 열렬하고 능동적인 의식부터 빈약하고
막연하고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의식까지 여러 의식들을 가질 수 있다.
 
이 차이는 개개인마다 다르고 또 각 개인에게도 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때는 열렬히 활기 있게 사랑, 찬양, 감사 등의 심정을 표명하는가 하면,
다른 때는 막연하고 희박하게 표명하고, 또 어느 때는 아무 의식도 하지 않고
그냥 살아기가도 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늘 주님께 대한 사랑, 찬양, 감사 등의 심정을 보다
생생하고 열렬한 모양으로 표명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해서 늘 의식적 기도의 행위를 계속하여 사는가-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의 근본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생활 속에 늘 주님께 여러 심정을 표명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또 때화 상황에 따라
여러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① 어떤 기도문이나 화살 기도를 계속 반복하여 외운다.
 
② 자유 기도로서, 주님과 자유로운 형태로 대화하듯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며 계속 기도한다.
 
③ 기도문을 외우거나 말하는 것도 없이 순전히 내면으로만 여러 심정들을 주님께 표명한다.
 
④ 주님께서 여러 사물 안에 현존하심을 의식하고 느끼며 산다.
(자기 안에, 타인 안에, 여러 피조물 안에, 사건 안에, 여러 행위와 활동 안에 등등.)
 
⑤ 늘 하느님 안에, 하느님께 의지하여, 하느님을 숨쉬며 산다는 의식을 계속 유지한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 듬북 잠겨 존재하고 산다는
전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의식을 가지며 산다.
 
 
5) 기도와 활동을 하나로 융화시킨다
 
자기 인격과 생활 안에 기도와 활동을 하나로 융화시키는 것은
아마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특히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기도만 잘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고,
또 인간적 활동만 잘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먼저 기도와 활동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화해, 화목시키고,
그 다음에 기도와 활동이 상호 분리되고 완전히 다른 행위, 다른 체험이 되어 있는 상황을
통합시켜 단 하나의 행위, 단 하나의 체험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활동이 기도를 흡수할 수 있도록
활동 자체를 옳고 선하고 정성된 자세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활동의 내용과 활동하는 내적 자세와 그 동기와 목적을
옳고 선하고 정성되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하는 것이다.
 
활동 자체가 나쁘거나 활동하는 내적 자세가 불순하거나
어떤 좋지 못한 동기와 목적으로 활동한다면, 그 활동은 기도를 흡수하지 못한다.
 
활동 자체에 마음이 사로잡히거나 불안, 두려움, 흥분 등의 심리 상태로나 혹은 무성의,
형식주의, 무질서 등의 자세로 활동할 경우에도 그 활동은 기도를 흡수하기 어렵다.
 
한편, 악의와 사리 사욕을 버린 활동, 순수한 헌신과 사랑의 활동은 기도를 쉽게 흡수하고,
활동하면서 기도하는 ‘활동 속의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침착하고 질서와 정성이 있는 활동도 비교적 기도를 잘 흡수할 수 있다.
기도를 보다 쉽게 흡수하는 활동의 ‘순수화’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악의와 욕심과 교만으로 인한 활동’에서 ‘선의와 헌신과 겸손으로 인한 활동’에로,
‘마음이 없는 활동’에서 ‘사랑의 활동’에로, ‘형식적 활동’에서 ‘정성 담은 활동’에로,
‘외면적, 자기 중심적 활동’에서 ‘내면적 자기 봉헌의 활동’에로,
그리고 ‘자기 멋대로의 활동’에서 ‘하느님의 뜻대로의 활동’에로
단계적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것이 ‘활동의 순수화’이며, 활동이 순수화되면 순수화될수록 기도를 흡수하게 되고,
활동 속에서 기도하게 된다.
 
이리하여 기도와 활동이 일치된 하나의 행위가 되고, 그렇게 일치되었을 때
그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의 삶은 ‘기도의 삶’이 되는 것이다.
 
 
6)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 산다
 
그리스도교적 영성 생활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일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봉헌하여 사는 사람이다.
 
먼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일의 ‘목적’, ‘동기’, ‘이유’, ‘중개’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고 바친다.
 
매일의 일상적 일도 특별한 일도, 활동도 고생도 고통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행하고 바치고 받아들인다.
 
인간적으로 어려운 일도,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하고 참고, 사랑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봉사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일의 ‘기준’이 되신다.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의 기준이 되시므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여 모든 것을 평가하고,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둘째로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동반자’가 되신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하면서도,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운 친구 또는 애인으로 모시고,
그분과 애정을 나누어 모든 것을 함께하여 살아간다.
 
특히 수난하신 그리스도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을 나눈다.
 
그리스도인 생활이란 마치 그리스도를 감각적 육안으로 보듯이,
항상 그분을 가까이 모시고 그분의 손을 잡아 그분께 의지하여 사는 것이다.
 
셋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동일화’ 또는 ‘일체화’를 뜻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1 고린 12, 27)이요,
“그리스도의 지체”(1 고린 6, 15)이며, “또 하나의 그리스도”이므로.
그리스도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예수처럼 생각하고, 예수처럼 말하고, 예수처럼 행동하고, 예수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현실은 이 “그리스도처럼” 또는 “마치 내가 그리스도인 양”의 표현 이상으로
실제로 “또 하나의 그리스도”인 것이다.
 
따라서“만약 내가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 것인가?” 하고
자문하기보다 “나는 실제로 또 하나의 그리스도이니까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예수의 지혜”(1 고린 1, 30)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예수의 사랑”(2 고린 5, 14)으로 사랑하고, 예수의 감정으로 느끼고,
예수의 눈으로 보고, 예수의 입으로 말하고, 예수의 손으로 만지고 일한다.
이리하여 “예수의 삶”(갈라 2, 20)을 살게 된다.
 
결국 그리스도적 영성 생활의 극치는 다음 성서 말씀을 그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 7-8).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그 밖에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 고린 10, 31).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 21).
 
이와 같이 사는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복되고 보람찬 영성의 삶을 살 것이다.
 
 
 
* 이 글은 도화동 천주교회 김은주 엘리사벳 자매님의 도움으로 입력되었습니다.
<사목, 1991년 12월호, pp.37-44 / 인천교구 시노드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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