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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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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임신부 작성일14-11-02 06:38 조회15,9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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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령의 날에 >                              (2011.11.05)
 
 
 
제가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살기 시작한 이후의 어느날에 매일 바쳐오던
미사경본의 기도문 중에 갑자기 새롭게 느껴지는 기도문이 있다.
 
그 부분은 주님의 기도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기도문이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악에서 구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이다.
 
이 기도문이 왜 저에게 새롭게 느껴지게 되었는가?
우리가 죽는 날까지 죄와 악에 빠지지 않고 모든 시련 가운데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는 삶을 살려 아무리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다해도
그것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주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기도문의 제일 끝에 있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말을
과거에는 이 세상 종말의 공심판이나 사심판에나 맞이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제는 공심판과 사심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 다시오심은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맞이할 수 있고 또 맞이해야 한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다시오심, 재림을 먼 훗날의 공심판이나 사심판만으로 생각하는
신앙인의 삶은 자연히 나태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예수님의 재림, 다심오심을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로 현재화시키는
신앙인의 삶은 자연히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 마음이 느긋해질 수밖에 없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띵까띵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보편심리이다.
다시 말해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시험을 앞두고 벼락공부한 경험이 생각나시지 않는가?
그리고 벼락공부의 결과가 대체로 어떤 것인지도 잘 기억나시지 않는가?
 
소신학생 시절, 저희 반에 아주 공부를 잘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거의 늘 1등이었다.
 
그 친구는 시험 기간만 되면 늘 다른 친구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신학교는 규칙생활이었기에 취침시간도 정확히 10시, 시험기간만 11시였다.
남들은 규칙을 어기며 침대 밑에서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담요로 가리거나
아니면 화장실에 가서 도둑공부에 여념이 없는데 이 친구는 늘 일찍 잠이 든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 남들은 교실에 앉아 공부하느라 땀을 흘리는데,
이 친구는 운동장의 농구 코트에서 혼자서 여유롭게 농구를 즐기는 모습이
교실 창밖으로 눈에 들어온다. 다른 친구들에게 정말 얼마나 미움을 샀는지,,,,
나중에 신학교를 떠났지만 아주 기억에 많이 남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머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평소에 늘 꾸준히" 공부하는 친구였고 그러하기에
그 친구에게 있어서의 '시험'은 늘 준비된 생활이었던 것이다.
 
과거의 저는 사제였지만 예수님의 재림에 준비된 사제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공심판이나 아니면 나중에 저 먼 훗날 죽을 때나 맞이하는
사심판의 아주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그러한 재림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병으로 "이러다가 죽는 것이구나."를 경험하면서
2천년 전의 예수님이 지금 당장에도 나에게 다시 찾아오실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체험하면서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죄와 악에 빠지지 않고 이 세상의 시련 속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고 두려움 없이 예수님의 재림, 즉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심"을
정말 기쁘고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내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될 그날에야 예수님을 맞이하지 말고,
미리 지금 그분을 내 안에 맞아들여 그분과 함께 죽는 날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그 방법이 바로 미리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겨 드리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차피 마지막 죽는 날,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려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내맡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맡김은 다른 말로 "드림" 이며, 거룩한 말로 "봉헌"이라 한다.
나의 모든 것을 어떤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느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니 '거룩한 드림', 거룩한 내맡김이다.
 
어차피 언젠가 나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릴 것,
지금 미리 나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면,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며,
하느님은 나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유행가가 생각난다.
여러분이 혼인으로써 배우자에게 서로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니,
서로의 모든 것을 얻게 된 것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이 저에게 주신 마지막 사명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이 본당에 파견받은 것도 그 이유밖에 없다.
제가 그 사명을 다 완수하면 저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거룩한 내맡김"은 예수님의 재림, 다시오심을 준비하는 "최고의 등불"이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11월, 이 위령성월은 죽은 영혼들만을 위해 기도하는
그런 위령성월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위령(慰靈)" 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위로할 慰, 신령 또는 영혼 靈, 영혼을 위로한다는 말이 아닌가?
 
위령성월은 어쩌면, 죽은 영혼들의 영혼보다
먼저 살아 있는 우리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성월이 아닌가 모르겠다.
왜냐하면 사실, 몸은 건강히 살아 있으나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죽은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위로해 줄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아닌가?
자기 영혼을 다스린 뒤, 다른 영혼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은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위령성월, 아무쪼록 여러분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점검하여
죽은 영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 바쳐드릴 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영혼도 위로해 드리는 거룩한 달이 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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