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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가해 대림 제4주일(12.18)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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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옥란빅토리아 작성일22-12-18 14:31 조회1,6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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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제 4주일 가해

 

 

누구도 모르라고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오시는 대하 드라마에 여러 인물이 출연합니다. 슈퍼스타 예수님, 길을 닦는 세자 요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의 마리아, '여인 중에 복되십니다.'의 엘리사벳, '아기의 이름은 요한'의 즈카르야 그리고 요셉. 이 중에 한마디의 대사도 없는 분이 바로 요셉 성인입니다. 요셉 성인은 비록 엑스트라 같았지만 하느님의 강생을 돕는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요셉 성인은 만삭이 된 마리아를 당나귀에 태우고 천리길을 가고, 여관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받아냅니다. 또한, 어린 예수와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이집트까지 피난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골 목수 일을 하며 예수님이 장성하기까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일을 돕기 위해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바쳤습니다.

 

과거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전체주의적인 성격이 좀 있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양의 개인주의가 들어오면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며 좀 세련된 사람들이 그것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만연하게 된 그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거의 사라지고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우선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자기만을 위한다면 공동체나 공동선 같은 것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공동체, 공동선이 없는 사회는 소속감도, 정체성도, 방향성도 없는 혼란스러운 아귀다툼의 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를 이루려면 필수적으로 개인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기희생이 말없이 이루어지면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경쟁과 자기선전(P.R.)의 현대사회에서 말 없는 희생이란 참 기대하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요셉 성인에게서 공동체를 위한 말 없는 자기희생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남모르게입니다. 그분은 마리아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게 하려고 남모르게 일을 처리하려는 고운 마음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불합리적인 하느님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후에도, 남모르게 묵묵히 자기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우리 교회에도 요셉 성인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말없이 남모르게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 말입니다. 남모르게 선행하고, 오해를 사더라도 항변하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로 그 일을 계속해내는 그런 사람. 산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모두 시끄럽게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고 있을 때, 산에 올라가서 묵묵히 나무를 심는 사람, 그런 사람 말입니다. 남모르게 선행을 하고, 사람들이 그 일에 놀랄 때, 뒤에서 몰래 그것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그런 사람. 분명히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런 공동체가 우리 공동체였으면 좋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요셉 성인이 왜 임종하는 이의 수호성인이 되셨는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세상을 떠나는 가장 고통스럽고, 두렵고, 외로운 임종(臨終)의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 요셉 성인이시기 때문이겠지요. 그분이 주시는 것은 말 없는 지지와 동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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