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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가해 연중 제30주일(10.29)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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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10-29 14:55 조회1,121회

본문

* 연중 제 30주일 가해

 

 

단순한 두 계명(誡命)”

 

단순하다는 것이 어떤 때는 좋은 의미로, 어떤 때는 좀 모자란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단순'의 반대가 '복잡'이라면 저는 단순을 더 좋아합니다. 인생 중대사라는 것이 생로병사, 즉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고, 인간관계라는 것도 진실과 성실이면 다 통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별로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십계명에서 비롯된 이스라엘의 율법조항은 613조항이고, 그것을 위한 금지조항은 365조항, 실천조항은 248조항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율법조항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 사랑''이웃사랑', 두 계명뿐이라고 예수님은 오늘 거침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조항에다 많은 세부조항까지 만들어가며 율법으로 먹고살던 율법 교사들은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 두꺼운 율법 책을 단 두 줄로 요약해 버리셨으니 말입니다.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바로 예수님이 밝히신 율법의 정신이고 우리 '인생의 목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르치신 대로, 늘 하느님 뜻을 찾기 위해 피땀 흘려 기도하셨고, 이웃사랑을 위해 당신 몸을 바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더 단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이웃은 나의 연인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 단순해 보이는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앞에 무척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냥 대충대충 다른 일 없을 때, 일주일에 한 번 성당 가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다하고, 우리 목숨을 다하고, 우리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나 깨나, 어디서나, 목숨 바쳐 하느님께 사랑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동정하듯이 이웃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알뜰하게 자기 몸과 자기 가족을 챙기듯이 '너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명령하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두 계명은 우리가 평생, 깨어서 노력해야 하는 큰 계명입니다. 양적(量的)으로가 아니라 질적(質的)으로 지키기 힘든 계명입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큰 계명이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heart)을 다하고, 목숨(soul)을 다하고, 정신(mind)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나는 얼마만큼, 요렇게, 저렇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그런 사랑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위에 던져진 낙엽이 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불같은 사랑을 받아들여 순식간에 타버리는 낙엽처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타버려 죽어야 지킬 수 있는 계명이 바로 하느님 사랑의 계명입니다.

 

'너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둘째 계명도 만만치 않습니다. 내 아픔, 내 가족의 어려움만 절실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은 한 다리 건너서기에 눈에서 멀어지면 그냥 그뿐인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웃의 아픔에도 내 가슴이 찢어지고,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내 마음과 내 시간을 우선적으로, 미련 없이 내어주는 그런 사랑이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둘째 계명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진정한 이웃사랑은 꼭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이 나를 창조해주셨고, 지금 나를 살려두시고, 내가 부족해도 예수님을 통해 구원해주실 분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에 대한 감사의 정을 느끼면서, 그 감사함에 대한 보답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보답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에, 그냥 대충 사랑하지 않고, 마음과 정신과 목숨을 다하는 비장한 각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지혜롭게, 마음과 힘을 다해 피땀 흘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 교사들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계명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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