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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05.29)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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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5-30 09:27 조회6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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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요한 12,24-26)

 

 

초기 순교자들

 

1791년 모친의 제사 문제로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를 필두로 조선 천주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는 교회가 세워진 지 불과 17년 만에 당하게 된 커다란 시련이었습니다. 이때 희생된 순교자들은 세례받은 지 얼마 안 된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통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하느님이 모든 이의 주인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을 자신의 목숨보다, 현세의 지위나 재산보다 더 앞자리에 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순교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사변적 지식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증거하고 실천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하느님 안에서 모든 이가 평등함을 깨달았기에, 그 당시 신분제도의 악습을 거슬러 모든 사람을 형제, 자매로 대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새로운 삶을 통하여 묵은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박해가 있던 1801년 신유 년, 북경교구장 명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성사를 집전하고 신앙을 다져주던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은, 조정에서 자신을 잡기 위해 신자들에게 심한 박해를 가하고 있음을 알고, 마침내 자수하여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또한, 당시 총회장이던 최창현 요한 순교자도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을 위해 투신했습니다. 명도회 회장이었던, 어린 정하상 바오로의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나, 여회장 강완숙 골롬바도 겨레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 바쳐 노력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첫 박해 때 그들의 순교는 한국 그리스도교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 땅의 모든 순교자는 복음의 증인이요 실천가였습니다. 순교자의 후예인 우리는 순교자들이 시작한 민족 복음화의 꿈을 실현해나가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자랑스러운 순교자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초기 순교자들의 시성(諡聖)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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