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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평신도주일 (2014.11.16) 오대일 요셉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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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스콜라스티카 작성일15-02-10 23:16 조회13,79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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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오늘 복음은 탈렌트의 비유인데, 탈렌트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 외에도 루카 복음 19장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른 탈렌트를 맡겨 주었지만, 루카 복음에서는 열 명의 종에게 똑같은 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다른 탈렌트를 맡긴 마태오 복음보다는 똑같은 돈을 나누어 준 루카 복음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핵심은 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으며, “맡겼다”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즉, 오늘 복음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탈렌트를 맡겼다는 것은 결국 탈렌트가 종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며, 따라서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마치 자기 것인양 착각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은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이 평신도 주일인데, 우리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직급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 복음에서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다른 탈렌트를 맡긴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주인이 나중에 돌아와서 종들과 셈을 하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하느님 앞에 불려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역할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충실했는지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도 당당하게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평신도의 직무에 대해서 잠간 살펴보겠습니다.

평신도의 직무는 제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 교리시험문제였습니다.

먼저, 평신도는 세례성사를 통해 사제직, 예언직, 왕직(봉사직)의 세 가지 직무를 받습니다.

첫째, 사제직은 성직자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에 참여해야 하는 직무를 말합니다.

그래서 사제들이 받는 사제직을 특수사제직이라고 하고, 평신도들이 받는 사제직을 일반사제직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예언직이라고 해서 미래를 점치는 예언이 아니라,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직무를 말합니다.

따라서 평신도들도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왕직은 봉사직을 말합니다.

즉, 왕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이해서 이러한 세 가지 직무를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점점 만연되어져가는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너무나 각박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심지어 이런 세상에서 과연 종교가 의미가 있을까 회의에 빠져 종교를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우리 가톨릭교회도 세상속의 교회를 표명하고 있지만, 얼마나 세상속의 교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는 굉장히 많은 성장을 이루었으나, 세상속의 교회가 아니라 단순히 교회만의 교회인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신부님들은 신자들에게 왜 주일미사에 나오지 않냐고 하시지만, 사실 주일미사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미사에 나올 수가 없으며, 몸이 아픈 노인분들이나 장애인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국은 아직도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성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간혹 신부님들이나 신자들 중에는 우리 성당에 장애인이 얼마나 된다고 돈을 들여 장애인 화장실을 만드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경제적인 논리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루카 복음 15장에 나오는 되찾은 양의 비유에서 양 백 마리 중에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모습처럼 단 한 명이라도 소외된 이웃이 있다면, 그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즉, 교회는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성직자나 수도자들로만은 부족합니다.

따라서 세상 곳곳에서 살고 있는 평신도들의 직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50년 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세상의 변화에 따라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정신 아래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처럼 세상 곳곳에서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먼저 나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가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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