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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나해 주님 세례 축일(01.10)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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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1-10 16:40 조회1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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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

 

 

 

저의 선친은 1994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원래 말이 없고 과묵한 신씨 집안 출신이 아니랄까봐 평소에 그다지 말씀이 없으셨고 지금 생각에도 별로 자상한 아버지는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여느 아버지처럼 속정은 깊은 분이셨습니다. 선친은 신부가 되겠다는 아들의 뜻을 주저없이 허락해 주셨고 나중에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가톨릭 세례까지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막내 아들이 신부가 된다는 것을 주변에 자랑 삼아 자주 이야기 하셨고 제가 수도원 생활 하는데 음으로 양으로 보이지 않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신학교 1학년 처음으로 방학을 맞아 집에 갔던 일을 기억합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던 예전처럼 흐르던 신씨 집안의 침묵을 깨는 데는 소주가 제격이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술잔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고 형들의 소주잔도 순배를 다음 기분이 좋아지신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길아 나는 일요일에 산에 가서 절에 가면 부처님께 우리 아들 좋은 신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젊었을 때부터 매주 일요일이면 종교처럼 등산을 다니시던 아버지, 열심한 불자는 아니었지만 부처님 앞에서면 합장을 잊지 않으시던 아버지는 늦은 가톨릭 세례가 아직 어색하셨던지 등산 길에 찾은 어느 절의 부처님 앞에서 막내 아들이 좋은 신부가 되게 해달라고 손을 모으시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바라셨던좋은 신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생 근면하고 성실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사셨던 아버지의 뜻이좋은 신부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으리라 믿으며 저는 22년의 사제 생활을 근면하고 성실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과 말씀이 생생합니다.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은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저의 나약함으로 힘들고 지쳐 쓰러질 , 서릿발 같은 유혹과 갈등이 나를 휘감을 , 아버지의 말씀은 저를 다시 일으키고 마음속 꺼져가는 불을 다시 지핍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좋은 신부 되라던 아버지의 기도와 부처님의 자비 덕분인지 나름 길을 걸어올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제가 신부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제가 신학교 4학년 돌아가셨습니다. 지금도 하느님과 부처님 곁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예수님 세례에 관한 복음을 묵상하니 저의 선친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고 말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성경 학자들은 말씀이 예수님께서 최초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남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탄생에 관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 갔던 이야기,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친근감, 그리고 사람들의 수군거림. 예수님은 이런 일들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런 예수님에게 세례 들려왔던 하늘로부터의 소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가슴 뜨거워지는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그것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랑받는 아들이었구나.’ 이런 자각은 예수님의 마음 속에 새겨져 평생 꺼지지 않는 불씨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버지로서 함께 주신다는 생각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든든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때문에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있었고, 마침내 하느님의 뜻이라면 목숨도 바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을 분명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힘들 다시 일어나게 하고, 차가워진 가슴에 불을 지피고, 나를 살아있게 하는 말씀과 경험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줍니다. 어려운 시기는 우리 가슴속에 잠자는 말씀과 경험을 다시 살려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코로나라는 절체절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어붙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고 내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말씀과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에 죽은 아들 예수를 가슴에 품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듯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우리도 가슴에 품고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시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 마음에 드는 아들, 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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