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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나해 사순 제5주일(03.21)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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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3-21 15:18 조회4,6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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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 새 계약을 새겨주리라

 

저는 수 년 전에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순례 일정 중에 이집트 수도 카이로 외곽에 있는 모카탐이라는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고 들었던 일들이 오늘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과 연관되어 떠올라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모카탐이라는 지역은 카이로의 쓰레기 하치장입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쓰레기를 분리하여 생활을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모카탐의 사람들을 자발린이라고 부르는 데, 자발린은 아랍어로 쓰레기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랍니다. 말 그대로 쓰레기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지역에 들어설 때 제 코 속을 파고들었던 악취와 사람 몸을 휘감던 파리 떼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자발린들은 대부분 크리스챤들입니다. 이집트의 그리스도교 교회를 콥틱 교회라고 부르는데 콥틱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이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갔던 시절부터 세워진 유서깊은 교회입니다. 콥틱 크리스챤들은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6세기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점령한 이슬람교의 지배 하에서도 가혹한 박해와 핍박을 이겨내며 묵묵히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콥틱 크리스챤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팔목 안 쪽에 십자가 문신을 새긴다고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크리스챤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가톨릭 신자라고 소개하자 자랑스럽게 자신의 팔목을 보여주며 자신도 크리스챤이라고 화답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문신을 보며 험난한 역사와 처절한 박해를 이겨낸 그들의 모습에 감동 하면서도 주위를 둘러 싼 산더미 같은 쓰레기 속, 지금까지도 이어오는 이슬람 교도들의 핍박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그들의 현실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야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탈출기에 등장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시나이 계약의 내용입니다. 모세의 영도로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자신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모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이집트를 떠나왔지만 광야의 생활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에 질린 이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모세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늘어갔고 모세도 지휘력을 상실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불만의 절정이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계약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하리라.”

 

그런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도착 하였습니다. 약속의 땅에 도착한 이들은 이제 태평성대를 누리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신흥 강대국인 바빌론의 정복 야욕은 이스라엘을 다시금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그때 예레미야 예언자는 풍전등화 같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계약을 다시 일깨워 줍니다. 그 전보다 더 강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계약을 알려줍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이렇게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마음 깊이 새겨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결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마음에 새겨진 하느님 약속입니다. 설령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가슴깊이 새겨진 하느님의 사랑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까지 역경의 역사를 견디며 살아 남았는가 봅니다. 아마도 이집트의 콥틱 크리스챤들은 그런 마음으로 자녀들의 팔목에 십자가 문신을 새겨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백성이라는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했나 봅니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에 막혀 너희의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슬람교도들의 박해가 앞으로 대대손손 이어지더라도 결코 너희는 하느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희망의 약속을 팔목에 새긴 것이라고 봅니다.

 

2021년 도쿄에서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마주한 현실도 결코 녹녹치 않습니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의 한 가운데에 있고, 가까운 미래에 다가온다는 대지진의 전조 현상에 불안에 떨어야 하고,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침체의 분위기가 우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은 다시한번 희망을 일깨워 줍니다. 그동안 어두운 현실 때문에 잊고 살았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접어 두었던, 우리 가슴과 마음에 새겨진 하느님 계약을 되새겨 줍니다.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나는 그 계약을 너희 가슴에 새겨 놓았다. 그러니 언제나 그것을 기억하고, 볼 때마다 힘을 내어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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