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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나해 주님 부활 대축일(04.04)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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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4-04 16:29 조회1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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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부활 대축일 나해

 

 

바로 당신이 부활하신 예수님

 

여러분, 부활 축하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면 여러분은 정말로 기쁘십니까? 참으로 돌아가셨던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처럼 기쁘십니까? 여러분이 정말로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기쁘십니까? 아니면 별다른 감명도 없는데, 교회가 축제를 벌이고,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 같으니 마지못해 기쁘십니까? 올해도 역시 부활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그럼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의 친구나 가족 혹은 친지 가운데 먼저 돌아가신 어떤 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면 더 적당하겠습니다. 입관을 하고, 장례식을 하고, 그분을 땅에 묻을 때 느꼈던 아쉬움과 아픔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더 잘 해주지 못한 것,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사랑, 상처를 안고 가게 해서 많이 미안했던 마음. 살아계셨으면 더 잘 해 드렸을 텐데 하는 후회. 그런데 돌아가신 그분이 지금 여러분 앞에 갑자기 살아서 돌아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그분을 진정으로, 성심껏 사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온갖 고통을 받으시며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도와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 때문에 그 고통을 받으시는데도,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대는 군중 속에 모른 체 숨어 있었습니다. 처절하게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는 그분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그러고는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밤을 지냈을 것입니다. 이미 늦었지만, 그분이 다시 살아나신다면 눈물로써 사과드리고, 다시는 그분을 배반하지 않고 죽기까지 사랑하겠노라고 다짐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정말로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자기들이 배반했던 그 죄책감의 크기만큼 세상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하는 사랑으로 예수님께 보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자리는 제자들의 통회하는 마음속이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활동하신 자리는 새로워진 제자들의 삶 한가운데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스러움과 나태함도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는데 한몫을 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만나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열심히 사랑하겠노라고 다짐도 드리고 싶은데 그분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옛날이야기 속에, 2천 년 전 돌무덤 옆에 !’하고 서 계시지 않습니다.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우리 안에 계속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흰옷을 입고 수염 기른 유대인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늘 만나는 사람들이, 친구들이,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돌아가셔서 영영 뵐 수 없게 된 줄 알았는데 고맙게도 살아서 돌아오신 예수님입니다. 늘 내가 시큰둥하게 대하던 그 사람들 안에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염 난 유대인들 안에서가 아니라, 훗날 천국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이웃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부활한 이웃을 만날 수 있으며, 내가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짐스럽게 여기던 그 사람을, 부활하신 예수님 사랑하듯이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고, 그 사람을 부활시키는 사랑이고, 나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통찰과 회개와 은총을 통해 큰 깨달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입니다. 머지않아 죽게 될 이웃을 생각하고, 머지않아 죽게 될 자신을 직시하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일이지만 부활은 생명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살아있지만,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벌써 죽음을 겪고 부활한 사람입니다. 부활한 사람은 죽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활한 사람은 죽을 만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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