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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나해 연중 제22주일(08.29)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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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8-29 11:30 조회1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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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요즘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뉴스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관한 뉴스입니다. 미군 철수 이후 순식간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의 위협에 전 세계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전쟁과 테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무자비한 탈레반 정권의 폭정에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닌지, 가뜩이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두려움과 위험 속에 살아가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사건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며 전 세계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들의 폭력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입니다. 무차별 폭력, 무자비한 복수, 어린 소녀들의 강제 결혼, 여성들의 교육 기회 박탈, 온 몸을 가리는 부루카 착용 의무 등은 생명 존중, 차별 폐지, 인권 옹호 등의 단어에 익숙한 전 세계의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시대착오적인 율법과 관습임에 틀림없습니다.

 

탈레반은 샤리아라는 이슬람교의 종교법에 근거하여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샤리아가 이슬람 교리와 모하메트의 가르침에 충실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폭력과 차별의 행동들을 보면 과연 샤리아가 인권과 생명 존중을 중시하는 현대 세계의 법과 윤리에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 사회에도 많은 종교적 율법들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기원한 모세의 법, 할라카, 미슈나 등의 율법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정결에 관한 법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이 법은 사실 유대인들 생활 전반에 있어서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가려서 먹고, 쓰고, 만나고, 대해야 하는 생활의 법이었습니다.

 

그런 유대인 법에 충실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예수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 제자들이 율법을 어기는 것도 문제였지만 법의 질서를 깨뜨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이 조상들의 전통이자 사회를 지탱해 주는 근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잘 아셨습니다.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죄인으로 몰아세우고 율법을 지키냐 지키지 않느냐로 정결한 사람과 불결한 사람으로 차별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왜 존재하는지? 왜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 나온 결론으로 대답 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차별하고, 법에 가두어 선악을 판단하는 것을 예수님은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법은 하느님과 인간 모두를 공경하고 섬겨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치신 그리스도교의 새 계명은 유대교의 율법과는 다르게 하느님과 이웃 모두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탈레반이 등장하여 벌이고 있는 행동들을 보면 자신들이 믿는 신과 교리에 맹목적으로 집착한 이들이 어떤 일탈된 행동을 하는 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슬람의 창시자인 모하메트의 가르침과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는 인간을 차별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르침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들의 이념을 교조화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이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마음대로 교리와 신앙을 변질 시키는 것을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예수님도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비판과 반론에 우리가 느끼는 똑같은 심정으로 반박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하느님의 법이라도 이를 왜곡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떤 식으로 변질되어 나오는 지를 장황하게 예를 들어 말씀 하십니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오리려 그들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탈레반이라는 집단 속에서 이런 것들이 현실화 되는 것을 보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챤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은 원천이며, 같은 이상임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하느님의 피눈물을 느끼는 것이고, 이웃이 당한 아픔을 보며 하느님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이런 현실이 일어나지 않는 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법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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