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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다해 연중 제3주일(01.23)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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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1-23 16:00 조회2,5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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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오늘 여기서부터의 해방

 

오늘 루카복음의 예수님 말씀 중에 유독 해방이라는 말씀이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하시며 당신이 이 세상에 파견된 이유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해방의 의미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방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먼저 “815 해방이라는 말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일제의 억압과 지배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해방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구속, 억압, 굴레,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관점에서 오늘 예수님이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신다는 의미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리스도교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우리는 모든 굴레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죽음과 죄의 사슬에서 풀려났다.” 너무 의미심장한 말씀이라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삶의 모든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해방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어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고 모든 번민과 방황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신앙이 지금보다 백배, 천배 자라나겠건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어 모든 억압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순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억압에서 해방된다라고 말씀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그분의 가르침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우리에게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 때문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고 지평을 열어주는지 그리하여 우리를 어떻게 해방시켜 주는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로, 오늘 예수님은 먼저 당신 자신이 주님께서 부어주신 기름을 받고 주님의 영을 받은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성령과 음성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이고 그분의 성령이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예수님에게 큰 용기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활 동안 다가오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담담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셔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자각하였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억압 중에 심리적 억압인 열등감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못 배웠다는, 남들보다 가난하다는, 남들보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열등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평생 사람들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런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은 학력도, 재력도 아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누구보다 귀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시고, 주님께서 영을 내려 주셨고,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눈먼 이들에게 보내셨고, 주님께서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당신이 그런 일들을 하게 되었고, 당신은 주님의 이끄심에 의지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억압들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합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바라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소처럼 일을 하고, 행복해 지려고 온갖 것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런 것들이 내가 그렇게 몸부림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게 된다고 한들 반드시 나의 열등감을 해소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그런 헛수고를 하기보다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의 자비에 맡기십시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무엇을 가져야 한다는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십시오. 그런 억압과 굴레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주님의 선이 그 안에서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이타적인 자신이 된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기름을 받고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자각한 그 기쁨과 행복을 자신을 위한 일에 쓰지 않았습니다. 타인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특별히 억압받는 이들 가난하고, 잡혀가고, 눈멀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타인을 위한 열린 시선은 자신의 문제로부터 해방되게 도와줍니다. 우리가 가진 열등감은 밖으로 시선을 돌릴 때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에만 갇혀 내가 누구보다 열악한 상황에 빠져있다는 자책감의 굴레는 나를 억압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려 나와 똑같은 억압을 겪는 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를 보고, 나보다 더 열악한 굴레에 갇힌 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는지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타인들은 내가 해방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모든 억압에서 해방되게 해 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자유가 우리를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으로 이끌어 주리라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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